The Warhound and the World's Pain - Michael Moorcock
30년 전쟁이 한창이던 1631년 독일. 원래 프로테스탄트 측에서 가톨릭과 맞서 싸웠으나 이제는 양쪽 모두의 비이성적인 광기에 진절머리가 난 용병대장 울리히 폰 벡은 마그데부르크 포위전의 참상을 직접 목격하고서 틸리 장군의 휘하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서 폐허가 된 독일 땅을 방랑한다. 그러다가 그는 인적 없는 숲 속에서 성(城) 하나를 발견하고 거기서 한두 주 머물게 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무도 살지 않는 성인데도 먼지도 곰팡이도 없이 모든 것이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다는 점. 며칠 뒤 이 성의 주인인 듯한 행차가 성으로 접근하는 것을 보고 달려나간 폰 벡과 행차를 수행하는 기묘한 분위기의 호위병들이 충돌하려는 순간, 마차 안에서 나온 한 여성이 이를 막는다. 자신을 사브리나라고 소개한 그녀는 이 성은 자기 주군의 소유라며 정식으로 폰 벡을 초대한다.
그녀와 며칠을 함께 지내는 사이 폰 벡은 그녀의 지성과 재치에 놀라게 되고 점점 그녀에게 빠져든다. 그러나 그녀가 무언가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한 그는 그녀를 집요하게 추궁하고, 놀랍게도 그녀의 주군이 바로 지옥의 마왕 루시퍼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믿지 못하는 폰 벡 앞에 직접 나타난 루시퍼는 폰 벡에게 지옥을 구경시켜 준 다음, 그의 영혼이 이미 오래 전부터 저주받은 상태였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러면서 그는 폰 벡에게 거래를 제안한다. 루시퍼는 타락 이후 불완전한 존재가 되어버린 자신의 처지에 깊은 절망을 느끼고 다시 신과 화해하여 천국에서의 지위를 회복하고 싶어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의 모든 상처를(그리고 루시퍼 자신의 상처도)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전설상의 성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배를 구해서 가져오면, 천국에 들게 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지옥에 떨어지지는 않도록 해 주겠다는 것이 그 거래의 내용. 이에 폰 벡은 자신과 사브리나의 영혼을 해방시키는 것을 조건으로 그 거래를 받아들이고, 성배를 찾기 위한 험난한 여행을 떠나게 된다.

마이클 무어콕의 '군견과 이 세상의 아픔'을 읽었다. 잘 알려져 있는대로, 이 작품은 영원한 챔피언 시리즈 가운데 폰 벡 사가의 첫 번째 이야기다. 성배 탐색 모험담의 얼개를 지니고 있는 작품이지만, 주인공 울리히 폰 벡은 전통적인 윤리적 가치를 숭상하는 원탁의 기사들과는 완전 딴판인 인물이다. 그는 신앙을 잃어버린 회의론자이자, 자신의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용납하지 못하는 세상(배경이 30년 전쟁 때의 독일이다)에 대해 냉소적인 인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렇게 독특한 인물상을 설정하고 이야기를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성배 전설의 핵심인 '탐색(quest)의 수행을 통한 인격적 변용'이라는 부분은 놓쳐버린 듯 하다. 작품 끝부분에서 폰 벡이, 자신이 여행 도중에 많이 변했다고 읊조리는 부분이 있었지만, 나는 폰 벡이 어떤 면에서 인격적인 변용을 겪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는 처음과 별 차이가 없는 것 같구먼... 흠.

그럼에도 이 작품이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오는 것은, 이성을 통해 인간이 자기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작가의 굳은 믿음 때문이었다. 특히 인간이 자신의 신앙을 비판적으로 돌아보기 시작한 종교혁명 시기를 작품의 배경으로 잡은 것은, 이성과 조화라는 성배를 찾아헤맨 폰 벡의 여정이 단순한 개인적인 구원의 문제가 아니라, 아담의 타락이나 그리스도의 고난처럼, 인류 전체의 운명을 결정짓는 상징적인 행위임을 강하게 암시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루시퍼가 내게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면, 나는 그가 인류를 이성과 인간성으로 인도하여 언젠가는 우리가 힘들게라도 그 조화를 이룰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러니까 나는 신이 존재하기를, 루시퍼가 스스로를 구원하여 인류가 신과 악마 양쪽으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워지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구구절절 말이 많았지만, 한 마디로... 재미있다. 그리고 한 마디만 더 하자면 감동적이라는 거다. 언제나 그랬듯이 영원한 챔피언은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_^)b

by 애쉬블레스 | 2007/01/30 00:20 | SF/팬터지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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